
1219년 징기스칸은 호라즘 제국(Khwarezmian Empire)을 침공하여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동부의 이슬람 세력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는 이슬람 세계에 막대한 혼란과 파괴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십자군이 대치하던 중동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는 간접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유럽인들은 몽골군이 이슬람 세력을 격파하고 서진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 이들이 전설 속 프레스터 존의 군대가 아닐까 하는 희망적인 추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강력한 적이 동방에서 나타났다는 소식에 기독교 세계는 이를 자신들의 구원군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설 속 프레스터 존은 단순히 강력한 왕을 넘어, 완벽하고 정의로운 통치자로 묘사됩니다. 중세 유럽에서 널리 퍼졌던 전설 속 인물 프레스터 존은 동방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기독교인 왕이자 사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슬람 세력에 둘러싸인 유럽에 구원군을 보내줄 강력한 조력자로 여겨졌습니다.

11세기에서 12세기 십자군 전쟁 시기에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유럽인들은 동방에 숨겨진 강력한 기독교 국가가 나타나 도움을 주기를 염원했습니다. 이러한 열망이 프레스터 존 전설을 탄생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설 속 프레스터 존은 단순히 강력한 왕을 넘어, 완벽하고 정의로운 통치자로 묘사됩니다. 그는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환상적인 동물들과 진귀한 보물이 가득한 낙원 같은 나라를 다스린다고 알려졌습니다. 또한, 그의 나라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완벽하게 실현된 이상적인 사회로 그려졌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아시아, 특히 중앙아시아나 인도에 위치한다고 믿어졌습니다. 마르코 폴로와 같은 탐험가들도 그를 찾아 동방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찾지 못하자, 전설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실제로 고대부터 기독교 왕국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 전설과 결부되기 쉬웠습니다.

프레스터 존 전설은 중세 유럽의 지리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항해시대의 탐험 동기 부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많은 선교사, 탐험가들이 그를 찾아 나섰으나, 물론 실제로 그를 만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세계에 대한 지식이 확장되고 탐험이 활발해지면서, 프레스터 존 전설은 점차 허구임이 드러나며 그 영향력을 잃어갔습니다.

이 연대기에서 오토는 시리아의 주교 후고(Hugh of Jabala)로부터 동방에 강력한 기독교인 왕인 "프레스터 존"이 존재하며, 그가 십자군 국가들을 도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프레스터 존 전설이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사례이며, 이후 이 전설이 유럽 전역에 퍼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1145년에 저술한 자신의 연대기(Chronica)에서 시리아의 자발라 주교 휴(Hugh of Jabala)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인용하며, 동방에 '존'이라는 이름의 기독교인 사제이자 왕이 있다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이 프레스터 존 전설의 최초의 서면 언급으로 여겨집니다.